감정을 코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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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감정을 코디하다

관리자 0 462 2020.08.30 12:25



감정을 코디하다

 

김수자

 

 

악플에 시달리던 꽃이 먼 나라로 떠났다는 뉴스를 본다

이슬 한 방울 받쳐 드는 것도 힘겨웠을 꽃의 그 너머를 본다

아름답다는 말은 푸르렀던 순간보다 그것을 견디어 낸 시간의 말이다

가늘고 긴 선이 어색한 데 없이 말쑥한 마음의 천에 물을 들인다

무늬가 새겨진 감정에 햇살과 바람을 들인다

한사람의 입에서 나와 천 사람의 귀로 듣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져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

소란에 휘말린 꽃의 아름다운 목선과 팔과 등이 드러나고

가슴부분의 앞판이 양 갈래의 끈으로 이어져 목 뒤로 감정을 묶어버린다

칼날의 모서리 같은 말에 베이고 찔려 피 흘리던 꽃의 어깨의 바깥 선은

구성 방법이나 패드 종류에 따라 부드럽게 혹은 각지게 감정을 입힌다

악플도 문장이라 할 수 있을까

잘못 날아든 누리장나무꽃냄새 나는 말이 싱그러운 초록의 감정을 걸치면

단 한 벌만으로도 멋지고 우아한 분위기를 선사 받는다

파리지옥 같은 문장이 끈끈이주걱처럼 온몸에 들러붙어 심장을 갉아먹는 말에는

자락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나 코트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선이 품위 있는 그림자의 감정을 레이어드한다

필라멘트 끊어진 전구 같은 우울한 암전의 시간이 오면

금빛과 검은빛을 섞어 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감정을 켜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한 바깥의 어떤 소문을 알아챈다

아직도 그 꽃의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수월하게 이지적이고 계절에 맞는 감정의 옷을 착용한다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의 단어 속에서 오래 꽃의 문장을 들여다본다

별도의 여밈 없이도 쉽게 벗고 입는 것이 가능한 감정의 옷

멋스럽고 감각적인 선은 특별한 디자인이 없이도 돋보일 수 있다

속옷과 겉옷의 어울림이 내성적 문체를 더욱 높여주는 감정의 선을 장착한다

아직도 그 꽃의 문장을 이해할 수 없다

악플을 삭제한다

비로소 봄의 감정이 완성된다


fs58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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