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이었어요.
추석 전날인데 몸살감기를 심하게 앓았어요.
몸에 열은 펄펄 끓고 편도까지 부었어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어요.
병원에 가야했어요.
하지만 주머니에는 500원이 전부였어요.
500원으로 병원에 갈 수는 없었어요.
한기 때문에 온 몸이 떨렸어요.
두꺼운 이불을 덮어도 떨렸어요.
그날 밤 홀로 누워서 창밖을 보는데
보름달이 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모두가 떠난 고시원에는 저 혼자였어요.
추석날에도 쫄쫄 굶으면서 추석을 보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찡해요.
그 이후 저는 포스코에 입사를 했고
그 뒤에 GS칼텍스로 회사를 옮겼어요.
그러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 말했어요.
“
나는 앞으로 3년 안에 사표를 쓸 생각입니다.
그때 당신이 반대한다면 나는 당신을 잡을 수 없소.
그때 내가 사표를 내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라오.
”
아내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어요.
뻥튀기 장사라도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 말이 씨가 되고 말았어요.
뻥튀기 장사는 아니지만 고생을 하거든요.
고시원에서 힘들게 공부할 때
돈이 떨어지면 막노동을 했어요.
그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때 두려움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삶의 본전은 언제나 500원이에요.
그 이상 되는 것은 제게 있어 언제나 덤이에요.
어제는
아내와 어려운 아이가 있는 집을 방문해서
과일 상자와 작은 봉투 하나를 놓고 왔어요.
제 삶의 덤으로 할 수 있는 작은 기쁨이에요.
요즘은 그 덤이 조금 많았으면 욕심이 들어요.
덤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생겼거든요.